🪫 일 안 했는데 피곤한 날, 진짜 고갈된 건 뭘까?
“일도 안 했는데 피곤하다”는 날의 정체
아무 일도 안 한 날인데, 저녁이 되면 지쳐 있다. 누워만 있었고, 회의도 미뤄졌고, 메시지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눈이 무겁고, 말수도 줄고, 아무것도 더 하고 싶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가? 진짜 우리는 오늘 '일'을 안 한 걸까? 사실은 오전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고, 점심 메뉴를 고르느라 15분을 넘겼고, 답장을 쓰려다 지우길 반복하다 하루가 갔다. 머리는 쉰 적이 없고, 감정은 조용히 소진되고 있었다. 이 피로는 일의 양에서 오는 게 아니라, 반응의 양에서 온다. 그래서 '한 건 없는데 피곤하다'는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우리는 '하지 않은 일들'로도 충분히 지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인지 피로는 조용히 축적된다
집중하지 않아도, 뇌는 계속 에너지를 쓴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틀고, 영상 중간에 쇼츠를 눌렀다가, 다시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간다. 보기만 한 건데, 이상하게 머리가 멍하다. 이건 인지 피로다. 뇌는 새로운 자극이 들어올 때마다 ‘주의 전환’이라는 고단한 작업을 한다. 이걸 몇십 번 반복하면 일을 안 해도 뇌는 과부하 상태가 된다. 특히 스마트폰 기반의 ‘멀티태스킹 소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에너지를 빼앗아간다. 쉬고 있었다고 느끼지만, 뇌 입장에선 쉰 적이 없는 하루. 그래서 멍한 피로가 남는다. 그리고 그 피로는 대부분, 이유 없이 무기력하다는 자책으로 연결된다.
❌ 결정 피로: 사소한 선택도 에너지를 앗아간다
오늘만 해도 얼마나 많은 결정을 했는지 떠올려보자. 커피는 마실까 말까. 마신다면 아이스로? 디카페인? 점심은 파스타? 아니면 김밥? 뭘 고를지 고민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결정들이 쌓이면 뇌는 지친다. 이걸 '결정 피로'라고 부른다. 정해진 업무는 없었어도 하루 종일 수십 번의 선택에 머무르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에는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 특히 그 선택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피로감은 더 커진다. 그래서 요즘은 선택지를 줄이는 삶, 루틴화된 결정이 오히려 더 여유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내린 결정 중, 진짜 나를 위한 선택은 몇 개였을까?
💣 미완료된 일들이 더 많이 소진시킨다
이상하게 오늘은 끝낸 일보다 미룬 일이 더 많이 떠오른다. 해야지 했던 이메일, 읽다만 기사, 열어만 본 메모 앱. 손도 안 댔지만 머리에서는 계속 맴돈다. 자이거닉 효과는 이걸 설명한다. 완료된 일보다 미완료된 일이 인지 자원을 더 오래 붙잡는다는 이론이다. '하지 않은 일'이 피로의 정체인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 하나를 끝내는 것보다, ‘오늘은 안 할 거야’라고 정리하는 것이 더 회복적일 수 있다. 마치 머릿속 탭을 닫는 것처럼. 물리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끝내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나를 위한 마무리가 부족했던 하루다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늘 나는 어디에서 소모됐을까?
우리는 하루가 끝나면 '오늘 뭐 했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그 전에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보자. '오늘 나는 어디에서 소모됐지?' 사람을 만났던 시간? 답장을 고민했던 순간? 정리되지 않은 메모를 계속 쳐다봤던 저녁? 일을 하지 않았어도, 생각하고 반응하고 미뤘던 시간 속에서 에너지는 줄줄 샌다. 그래서 가끔은 '생산성 일기'보다 '소모 일기'가 더 필요하다. 오늘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든 순간은 언제였는지, 에너지가 가장 많이 빠져나간 구간은 어디였는지. 그걸 쓰고 나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가벼워진다. 마치 기록하는 행위가 ‘이 감정은 이제 닫자’고 말해주는 것처럼. 오늘 어떤 순간에 가장 크게 반응했는지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회복은 '충전'보다 '차단'에서 시작된다
피곤할 땐 쉬어야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켜고, 배달을 시키고, 누워서 영상을 본다. 그런데 다 하고 나면 더 무기력해진다. 회복된 게 아니라, 또다시 입력을 받은 것이다. 진짜 회복은 '충전'보다 '차단'에서 시작된다. 화면을 끄고, 알림을 닫고, 말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 이 단절된 순간에 뇌는 비로소 숨을 쉰다. 그리고 머릿속에 남아있던 잔여 감정과 생각들을 언어로 옮기는 것, 그게 정리다. 말하지 않아도 좋다. 메모장에 '오늘 나는 피곤하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은 충전 대신 ‘차단’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하나의 회복입니다.